第1章
차가운 독일제 밀링 머신의 금속 표면을 손끝으로 훑었다. 이번만큼은 똑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내 이름은 한서윤. '남겨진 아이'라는 세 글자는 내 골수까지 깊게 박힌 낙인과도 같았다.
내가 태어나던 날, 아버지는 쌍둥이 언니를 품에 안고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었다고 한다. 간호사가 검고 왜소한 나를 뒤늦게 건네기 전까지는. 나를 본 아버지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이게 정말 내 자식이 맞나?"라고 중얼거렸다.
열여섯 살이 되던 해, 부모님은 사업을 하겠다며 서울로 상경하기로 했다. 어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넌 착하고 속이 깊잖니. 여기 남아서 아빠가 다니던 공장을 네가 이어받으렴"이라고 말했다. 옆에서 언니는 "서윤이는 튼튼하고 힘도 좋으니까 공장이 딱이야"라며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지난 생에서 나는 철강 공장의 가장 젊은 여성 밀링공이 되었다. 월급은 한 푼도 빠짐없이 서울로 보내졌고, 그 돈은 그들의 사업 밑천이 되었다.
내가 피땀 흘려 번 돈으로 그들은 시대의 흐름을 타 수천억대 자산가가 되었지만, 정작 나는 대규모 구조조정의 파도 속에서 마지막 남은 퇴직금마저 가족들에게 빼앗겼다.
그 시리고 시렸던 겨울, 나는 고립된 공업 단지의 칼바람 속에서 홀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이번 생은 다르다. 누군가에게 수혈만 해주다 말라죽는 '혈액 팩'으로 살지 않을 것이다.
내 운명은 내 손으로 직접 고쳐 쓰겠다. 남겨지는 사람이 아닌, 스스로 미래를 향해 걸어 나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1
다시 눈을 떴을 때, 코끝을 찌르는 쇠비린내와 귀를 울리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내 눈앞에는 밀링 머신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왼쪽 방호판에는 찌든 기름때가 묻어 있었다.
세월이 쌓여 이젠 닦아낼 수도 없게 된 흔적.
지난 생에서 공장장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사용하는 데 지장 없으니 그냥 둬.”
그렇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그 기름때처럼, 나 역시 방치된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 그 기름때가 노란 조명 아래에서 묘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엄지손가락으로 그 미끈거리고 차가운 감촉을 문지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때, 곁에 있던 아버지가 내 어깨를 짚으며 웃으며 말했다.
“공장장님, 보십시오. 이 녀석이 기계랑 궁합이 아주 잘 맞아요!”
“제 자리를 이 녀석한테 물려주면 마음 놓으셔도 될 겁니다.”
안경 너머로 나를 훑어본 왕 공장장이 입을 열었다.
“보통은 큰애가 자리를 물려받는데, 왜 굳이 작은애를 보냅니까?”
아버지의 미소가 살짝 일그러졌다.
“서윤이가 머리가 좀 둔해서요. 공장 들어오는 게 이 녀석에겐 유일한 살길입니다.”
공장장은 말이 없었다. 나는 이대로 내 운명이 결정되었음을 직감했다.
아버지는 서둘러 나를 밀링 머신 쪽으로 밀치며 말했다.
“여기 남아 성실히 일해라. 아빠는 기차 시간 때문에 먼저 간다.”
말을 마친 그는 언니 서나의 손을 잡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떠났다.
언니는 입모양으로 나를 조롱했다. '버려진 자식.'
하지만 내 마음은 평온했다. 나는 오늘이 어떤 날인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1990년 9월 15일.
부모님이 언니를 데리고 서울로 떠난 날.
대한민국이 아시안 게임 준비로 들썩이고, 공장 노동자들이 저녁 메뉴를 고민하며 웃음꽃을 피우던 평범한 날.
하지만 대규모 구조조정과 국가적 경제 위기가 닥치기까지 정확히 7년이 남은 시점이었다.
7년 후면 이곳의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내몰릴 것이다.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나처럼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스러져가겠지.
나는 머리 위 벽면에 붙은 낡은 표어를 올려다보았다.
【땀 흘려 일하는 보람, 건설하는 우리 산업】
7년. 나에게는 이 운명을 뒤집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2
다음 날 새벽, 나는 짙은 남색 작업복을 입고 작업장에 나타났다.
사수인 조 명장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퉁명스럽게 물었다.
“이 조그만 아가씨가 밀링 일을 버텨낼 수 있겠어?”
나는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 명장은 콧방귀를 뀌더니 쇳덩이 하나와 도면 한 장을 툭 던졌다.
“이거 보고 똑같이 깎아와. 합격하면 제자로 인정해주지.”
어려운 도면은 아니었다. 다만 아주 정밀한 손길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지난 생에서 나는 이 인정을 받기 위해 수개월을 헤맸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 도면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부품을 조 명장 앞에 내밀었다.
조 명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버니어 캘리퍼스로 치수를 재고 또 재던 그는 흥분한 목소리로 내 손을 꽉 잡았다.
“내 평생 제자를 여럿 키웠지만, 드디어 보물을 찾았구먼!”
“나만 믿고 따라와라. 내 기술을 전부 다 전수해주마!”
나는 작게 미소 지었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조 명장은 평생 16명의 제자를 길러냈고, 그들 모두를 자식처럼 아꼈다.
그의 제자들은 훗날 정밀 가공 분야의 장인들이 되었고, 일부는 대학에서 강의할 정도로 성공했다.
하지만 오직 제자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조 명장 본인은, 실직 후 마지막 남은 연탄 한 장까지 제자에게 주고 정작 자신은 눈보라 속에서 병사했다.
나는 아직 정정한 모습의 노장 을 바라보며 시큰거리는 눈시울을 꾹 눌렀다.
내가 있는 한, 이번 생의 그는 아주 따뜻한 겨울을 보내게 될 것이다.
3
서울에 도착한 부모님은 기다렸다는 듯 하소연 섞인 편지를 보내왔다.
사업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느니, 집을 구하다 사기를 당했다느니 온갖 핑계를 대며 은근히 돈을 요구했다.
나는 편지를 다 읽었지만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저 차곡차곡 정리해 책장 가장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을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장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한 씨네 둘째, 걔 참 독하더라.”
“부모가 그렇게 힘들다는데 천륜도 모르는지, 돈 한 푼 안 보낸다며? 피도 눈물도 없지.”
“그러니 부모가 걔만 떼어놓고 갔지, 쯧쯧.”
나는 실소했다. 부모님의 수법은 여전히 유치했다.
공장이 폐쇄적인 사회라는 점을 이용해 소문으로 나를 압박하려는 속셈이었다.
지난 생의 나는 영양실조에 걸릴 정도로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영양제 살 돈 몇 푼만 남기게 해달라는 부탁조차 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내가 돈을 좀 벌기 시작하자 "날개가 돋았냐"며 가족의 고통을 외면하는 파렴치한 자식으로 몰아세웠다.
결국 나는 월급 전부를 부치고 끼니를 걸러가며 일하다 생산 라인 위에서 쓰러지기 일쑤였다.
죽기 직전,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살려달라고 보낸 수차례의 편지들 역시 그들에겐 닿지 않았다.
아니,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들은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며 내 편지를 읽지도 않은 채 바다에 던져버렸다고 했다.
누구의 편지냐는 물음에 언니 서나는 웃으며 답했다지.
“어디서 우리 주소를 알아냈는지 모를 거지 한 명이 보낸 거야.”
이번 생의 나는 그딴 비난에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식당에서 배식을 담당하던 박 씨 아주머니가 국자를 휘두르며 사람들에게 호통을 쳤다.
“이 사람들아, 입 닥쳐! 어린 아가씨가 혼자서 얼마나 기특하게 버티고 있는데 어디서 혀를 놀려!”
사람들을 쫓아버린 아주머니는 내 품에 보따리 하나를 찔러 넣어주며 투덜거렸다.
“받아. 어린애가 기운 차려야지. 좋은 건 남 주지 말고 네 몸부터 챙겨.”
“또 누가 헛소리하면 가만 있지 말고 입을 확 찢어버려, 알았어?”
보따리 안에는 귀한 분유 가루와 영양제가 들어있었다.
코끝이 찡해져 아주머니께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아주머니는 쑥스러운 듯 손사래를 치며 멀어졌다.
두 생을 살며 "희생해라", "참아라"는 말은 수없이 들었지만,
"좋은 건 네 몫으로 남겨두라"는 말을 들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4
조 명장의 밑에서 2년 동안 사력을 다해 배운 결과, 나의 밀링 기술은 지난 생을 훨씬 뛰어넘었다.
생산 속도는 물론이고, 수십 년 경력의 숙련공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의 정밀도를 자랑하게 되었다.
공장 본부에서도 여러 차례 나를 표창했고, 마침내 '올해의 우수 숙련공'으로 선정되었다.
발표 당일, 빨간 종이에 붓글씨로 내 이름 '한서윤'이 적혀 게시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붙었다.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감탄했고, 일부는 여자가 어떻게 저렇게 잘하느냐며 의구심을 표했다.
하지만 내 작업물을 직접 본 이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측정기를 대보지 않아도 눈으로 느껴지는 완벽한 규격 때문이었다.
조 명장은 뿌듯한 얼굴로 공장장에게 말했다.
“공장장님, 서윤이는 제 후계자로 손색없습니다.”
“얘만 있으면 우리 공장에서 1급 기능장이 나오는 건 시간문제예요.”
까다롭기로 유명한 왕 공장장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공장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공장장님, 저 수치제어(NC) 기술을 배우러 가고 싶습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멀리서 들려오는 기계의 굉음만이 정적을 메웠다.
한참 뒤에 누군가 낮게 중얼거렸다.
“한 씨네 저 딸내미, 미쳤나 보군.”
조 명장도 당황해 나를 말렸다.
“서윤아,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 그 컴퓨터로 하는 기계 같은 걸 뭐하러 배워!”
조 명장의 반응은 당시 대부분의 노동자들의 생각이었다.
1992년, 구조조정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려는 조짐이 조금씩 보이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여전히 '공업 강국'의 단꿈에 젖어 있었다.
공장 스피커에서는 매일같이 '산업 혁신'과 'NC 기술 도입'을 외쳤지만, 노동자들에게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다.
수십 년간 손끝의 감각으로 먹고살아 온 장인들에게 숫자와 코드로 움직이는 기계는 신뢰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가공의 정밀도는 오로지 경험 많은 손길에서만 나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힘든 코드 앞에 서느니 차라리 손발이 부르트는 게 낫다는 게 그들의 자부심이었다.
지난 생의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나는 거대한 기계 제국이 단 하룻밤 사이에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전통적인 수작업 방식으로는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을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
나중에 구조조정의 피바람이 불었을 때, 살아남은 건 오직 발 빠르게 기술을 전환한 공장들뿐이었다.
나는 새로운 기술을 가져와 이 공장을 통째로 구하고 싶었다.
조 명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반대했다.
“너처럼 앞길이 창창한 애가 그런 불확실한 데 시간을 낭비해서야 쓰겠니.”
나는 미리 준비해둔 말을 꺼냈다.
“스승님,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새로운 걸 배우지 않으면 결국 뒤처지게 될 거예요.”
“제가 배워와서 우리 공장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조 명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나를 설득하려 했다.
“서윤아, 잘 생각해라. NC라는 게 쓸모없어지면 넌 몇 년 뒤에도 일반 노동자로 남을 수도 있어.”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는 우리 공장을 위해 그 길을 먼저 가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제야 조 명장은 대견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좋은 아가씨구나. 역시 내 제자답다. 젊은 네가 한 번 부딪쳐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승인은 빠르게 떨어졌다. 붉은 직인이 찍힌 서류를 손에 쥐었을 때,
나는 생애 처음으로 운명의 고삐를 스스로 잡았다는 기분을 느꼈다.
다시는 남겨지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앞서 나갈 것이다.
5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혼자 몸을 실어 수 시간을 달리는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그곳에서의 3년은 지독하리만큼 충실했다.
낮에는 작업장에서 코드와 정밀 가공 기술을 스펀지처럼 흡수했고, 밤에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독일어 원서를 뒤적였다.
동료들은 나를 보고 노동자가 아니라, 신과 맞서서 시간을 빼앗아 오는 농부 같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지난 생의 나는 자격지심과 자기연민 속에서 7년이라는 긴 시간을 허비했다.
이번 생에는 그 잃어버린 시간들을 몇 배로 되찾아와야만 했다.
교육이 끝나던 날, 기술 고문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한서윤 씨, 내가 본 학생들 중 기계 가공을 가장 깊이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중앙 기술 연구소에 당신 같은 인재가 꼭 필요해요. 만약 이곳에 남겠다면….”
조건을 다 듣기도 전에 나는 깊이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 공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문은 아쉬운 듯 웃으며 강요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는 언제든 비워두겠습니다.”
순간 멍해졌다.
어릴 적 집안에 맛있는 게 들어오면 부모님은 항상 언니의 몫부터 챙겼다.
내가 손을 뻗으려 하면 내 손등을 내리치며 말씀하셨지.
"이건 네 언니를 위해 남겨둬야 해."
항상 누군가를 위해 '남겨진' 존재였던 나에게,
누군가가 나를 위해 자리를 '비워두겠다'고 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서윤. 운명은 드디어 나의 손안에서 박동하고 있었다.
1995년, 한여름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계절에 나는 기술을 품고 공장으로 복귀했다.
처음에는 순탄치 않았다. 동료들은 내 기술을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이물질 취급하며 공장에서 내쫓으려 했다.
그러던 한 달 뒤, 공장에 거대 프로젝트의 주문이 들어왔다.
당시 산업 부흥의 거품이 꺼져가고 있던 시기였다.
정부의 발주량은 줄어들었고, 공장은 수개월째 적자에 허덕이며 민간 기업의 수주가 간절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주문받은 소재의 특성과 요구되는 정밀도는 숙련된 노동자들도 고개를 젓게 만들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도저히 납기일을 맞출 수 없었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나를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서윤이가 매일 떠들던 그 수치제어인가 뭔가가 그렇게 빠르다며? 한번 시켜볼까?”
“그게 되겠어? 큰 단가인데 망치기라도 하면 우리 다 끝장이야.”
나는 무표정하게 그들 앞에 서서 단호히 말했다.
“물량의 절반을 제게 주십시오. 실수가 있다면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홀로 밀링 차 작업량의 절반을 떠안았다.
일주일간 밤을 꼬박 새우며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코드를 짜 내려갔다.
그사이 손 빠른 노련한 기술자들은 이미 수십 개의 결과물을 내놓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지나치며 비아냥거렸다.
“NC 선반인가 뭔가 대단하다더니, 일주일 내내 기계만 만지고 있네? 아직 하나도 못 만든 거야?”
주변에서 킥킥거리는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기세등등하게 덧붙였다.
“능력 안 되면 큰소리나 치지 말지. 결국 우리가 다 해야 할 판이네.”
나는 그가 들고 있는 부품을 슬쩍 훑어보았다. 곧바로 문제점이 눈에 들어왔다.
“키홈 부분의 절삭 방향이 어긋났네요.”
사내는 발끈하며 소리쳤다.
“이 정도는 허용 오차 범위 안이야!”
그때, 작업장 문을 열고 한 직원이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큰일 났습니다! 방금 보낸 초도 물량이 검사에서 탈락했어요!”
“거래처에서 이 부품은 핵심이라 정밀도가 생명이랍니다. 전부 재작업하래요. 안 되면 다른 공장에 맡기겠다고 합니다!”
현장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이번 주문을 놓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단순히 손해를 보는 것을 넘어, 공장의 문을 닫게 만드는 마지막 결정타가 될 터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기계를 가동하고 코드를 입력했다.
옆에 있던 이가 참지 못하고 내 팔을 잡아끌었다.
“한서윤! 지금 제정신이야? 해결 방안을 같이 고민해도 모자랄 판에 또 그 기계를—”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불과 수십 초 만에 부품의 형태가 잡히기 시작했다.
기계는 스스로 공구를 교체하고 방향을 틀며 춤추듯 움직였다.
5분 후, 완벽한 형태의 부품이 배출되었다.
누군가 숨을 들이켰다. 숙련된 장인이 붙어도 최소 30분은 걸리는 작업이었다.
믿지 못하는 이가 캘리퍼스로 한참을 측정하더니, 사색이 되어 나를 바라보았다.
도면과 완벽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나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이 주문, 제가 완벽하게 끝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