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1章
요즘 남편이 부쩍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마침 중고 거래 앱을 훑어보는데, 한눈에 봐도 혈통이 훌륭한 렉돌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남편에게 깜짝 선물을 해줄 생각에 나는 망설임 없이 결제를 마쳤다.
판매자에게 연락해 직거래 장소를 확인하던 중, 남편인 ‘강도진’이 대신 갈 거라고 넌지시 덧붙였다. 그가 검은색 벤츠를 타고 갈 거라는 말과 함께.
그런데 갑자기 판매자가 공유했던 주소를 빛의 속도로 회수하더니, 날 선 말투로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당신이 뭔데 우리 남편더러 고양이를 데려오라 마라야?]
황당함에 대꾸할 틈도 없이 경고장이 날아들었다.
[나 강도진이랑 이미 혼인신고 마친 사이거든? 그의 벤츠 조수석은 내 자리니까, 어디서 감히 기어오르려고 해. 꿈 깨!]
화면을 쳐다보며 나는 멍해졌다. 화가 치밀기보다 상황이 너무 터무니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동명이인이 얼마나 많은데, 벤츠가 무슨 대단한 슈퍼카라도 되는 줄 아나 봐요? 사람 잘못 보신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예민하세요?]
상대는 더 이상 말 섞기 싫다는 듯 동영상 하나를 툭 던졌다. 잠옷 차림의 한 남자가 고양이에게 간식을 주고 있는 영상이었다.
[눈 크게 뜨고 잘 봐. 이게 내 남편이야. 그러니까 얼씬도 하지 마!]
영상 속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손에 힘이 풀려 스마트폰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뻔했다.
충격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상대는 짜증 섞인 음성 메시지를 연달아 보냈다.
“이 고양이 살 거야, 말 거야?”
“도진 씨가 뱃속의 우리 아기한테 안 좋을지도 모른다고 팔아치우라고 해서 내놓는 거지, 아니었음 절대 안 팔았어.”
…
10초 남짓한 짧은 영상이 화면 위에서 무한 반복되었다.
짙은 초록색 실크 잠옷을 입은 남자가 품에 안긴 렉돌의 털을 다정하게 쓰다듬고 있었다.
그 잠옷은 작년 결혼기념일, 내가 지인을 통해 밀라노 본점에서 공수해 온 한정판이었다.
5년을 함께 잠든 남자였다.
그가 한 줌의 재가 된다 해도 몰라볼 리 없었다.
강도진.
나는 떨리는 상체를 간신히 지탱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곧바로 중고 거래 앱의 부계정을 새로 만들었다.
상대인 ‘임다혜’의 아이디를 검색해 메시지를 보냈고, 곧 우리는 카카오톡 아이디를 교환했다.
비즈니스 미팅용으로 사용하는 내 서브 계정은 누가 봐도 빈틈없는 전문직 자산가의 프로필이었다.
나는 신속하게 친구 요청을 수락했다.
[다혜 씨, 고양이가 정말 예쁘네요. 가격은 얼마든 상관없으니 제가 꼭 사고 싶어요.]
전송 버튼을 누른 뒤, 이어서 이모티콘과 함께 메시지를 보냈다.
[요즘 우리 집 양반이 하도 속을 썩여서, 화풀이 삼아 그 인간 비상금 몇천만 원쯤 시원하게 긁어버릴까 하거든요.]
답장은 빛의 속도로 돌아왔다.
[언니 진짜 멋지시네요! 프로필 보니까 보통 분 아니신 것 같긴 했어요.]
[근데 우리 남편도 만만치 않아요. 자수성가한 젊은 CEO거든요. 곧 상장도 앞두고 있고요.]
[‘도진 건축 디자인’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업계에선 꽤 유명한데.]
그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분노를 넘어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회사가 어떻게 버텨온 곳인데.
지난 3년, 내가 해외에서 쌓아온 인맥과 명성을 쏟아붓고, 내 개인 자금 20억을 한 푼 한 푼 메워가며 키워낸 곳이다.
그런데 이제 그게 그녀의 입에서 ‘자수성가한 자본’으로 둔갑해 있었다.
임다혜의 자랑은 멈출 줄 몰랐다.
[휴, 사실 태교만 아니면 안 파는 건데.]
[남편이 이번에 교외에 30억짜리 단독 빌라를 제 명의로 전액 현찰 박치기해서 사줬거든요. 근데 새집이라 그런지 냄새가 좀 나서 아기한테 안 좋을까 봐 어쩔 수 없이 파는 거예요.]
30억이라는 숫자가 머릿속에 박힌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지난주 새벽 2시.
강도진은 전화기 너머로 눈물 콧물을 다 짜내며 애원했었다.
“서윤아, 회사 자금이 C라운드 펀딩에서 막혔어. 중요한 투자자들 접대랑 로비 비용이 급해.”
“현금 20억만 있으면 넘길 수 있을 것 같아. 나 진짜 이번이 마지막이야. 제발 도와줘.”
나는 그날 밤, 프로젝트 잔금으로 들어온 돈을 단 일 원도 남기지 않고 그의 개인 계좌로 송금했다.
그때, 스마트폰 상단에 남편에게서 온 장문의 카톡 메시지가 떴다.
[여보, 보내준 돈 정말 요긴하게 썼어.]
[투자자들 비위 맞추느라 이틀 내내 술을 마셨더니 위출혈이 와서 밤새 토했네. 그래도 걱정 마. 이 고비만 넘기면 당신한테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가정을 선물할게.]
‘완벽한 가정’이라는 다섯 글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속이 뒤집히는 역겨움이 밀려왔다.
나는 차가운 이성을 되찾고 임다혜에게 답장을 보냈다.
[그쪽 빌라 단지 풍수가 좋기로 유명하죠. 마침 저도 부동산 투자를 생각 중이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 바로 가서 고양이도 보고 새집 구경도 좀 할 수 있을까요?]
나라는 ‘자랑 대상’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임다혜는 곧바로 위치 정보를 전송했다.
[그럼요, 언니! 일찍 오세요.]
[오늘 저녁에 우리 가족끼리 집들이 파티하기로 했거든요. 늦으면 제대로 대접 못 해 드릴까 봐 그래요.]
나는 위치를 저장하고 ‘네’라고 짧게 답했다.
그리고 본계정으로 돌아와 강도진에게 답장을 보냈다.
[고생 많았어, 여보. 오늘 저녁 우리 엄마 생신 잔치 늦지 말고 와.]
저녁 7시 30분. 벨을 누르자 사진 속의 임다혜가 문을 열었다.
풀착장한 명품 수트 차림에 값비싼 선물을 들고 서 있는 나를 보자 그녀의 눈이 번뜩였다.
“고양이 보러 오신 언니죠? 어머, 어서 들어오세요!”
거실로 발을 들이는 순간, 심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프랑스 빈티지 스타일의 아치형 문부터 거실 중앙의 커스텀 크리스탈 샹들리에까지.
심지어 벽면 한쪽의 매립형 수납장까지도 내 컴퓨터 속 ‘비밀 설계안’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
귀국하면 우리가 살 집이라며 내가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직접 그린 도면이었다.
강도진은 그 도면을 보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디자인이라며 나를 껴안았었다.
그런데 이제 그는 그 따뜻함을 고스란히 도려내 다른 여자에게 바치고 있었다.
임다혜는 내가 거실을 훑어보는 것을 보고 의기양양하게 배를 내밀었다.
“언니, 보는 눈 있으시네? 이거 전부 우리 남편이 직접 디자인한 거예요.”
“그 사람, 건축계에선 보기 드문 천재거든요.”
그녀는 나를 2층 서재로 이끌었다.
“이것 좀 보세요. 이건 남편이 이번에 시청 랜드마크 공모전에 낼 도면이에요.”
책상 위에 펼쳐진 도면은 너무나 익숙했다.
그건 강도진의 디자인이 아니었다.
내가 다음 달 국제 건축 대회에 제출하려고 준비하던, 지난 3년의 커리어를 결정지을 내 피땀 눈물이었다.
그는 내 돈을 갈취한 것도 모자라 내 미래까지 통째로 훔치려 하고 있었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시 거실로 내려오자 임다혜가 주스를 내왔다.
벽면의 절반을 차지한 대형 웨딩 화보를 보며 그녀가 문득 한숨을 쉬었다.
“남편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게 너무 아쉬워요. 이렇게 잘 된 거 보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일찍 돌아가셨다고요?”
나는 아무렇지 않게 주스를 마시며 물었다.
임다혜는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도진 씨 중학교 때 집에 큰불이 났대요.”
“부모님이 도진 씨를 구하려다 두 분 다 돌아가셨대요. 그게 남편의 평생 한이라 그런지 가족에 대한 애착이 대단해요. 저한테도 얼마나 지극정성인지 몰라요.”
황당한 거짓말에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자수성가한 자산가 코스프레를 하려고 멀쩡히 살아계신 친부모를 불길 속에 밀어 넣다니.
임다혜는 눈가를 훔치더니 거실 장식장에서 나무 상자 하나를 소중히 꺼냈다.
안에는 영롱한 빛을 내는 비취 노리개가 들어 있었다.
“이건 화재 현장에서 유일하게 건져낸 유품이래요.”
“어머님이 마지막 유언으로 미래의 며느리에게 꼭 전해주라고 하셨다더라고요.”
“며칠 전 혼인신고 할 때 도진 씨가 직접 제 목동에 걸어줬어요.”
등불 아래 비쳐 보이는 비취의 무늬를 보는 순간, 나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그건 강도진과 고향에서 약혼식을 올릴 때, 시어머니가 내 손을 붙잡고 “우리 강 씨 가문 며느리는 너 하나뿐이다”라며 건네주신 가문의 가보였다.
해외로 나갈 때 잃어버릴까 봐 금고 깊숙이 넣어두었던 물건.
그는 기어코 금고까지 털어 조강지처의 가보를 상간녀에게 바친 것이다.
그때 임다혜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인을 확인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떴다.
“아빠, 엄마! 벌써 도착하셨어요? 네! 바로 새집으로 오세요!”
전화를 끊자마자 그녀는 강도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야, 우리 부모님 벌써 도착하셨어.”
“오늘 접대 같은 건 다 취소하고 일찍 오면 안 돼? 우리 오늘 여기서 미리 집들이 파티하자, 응?”
전화기 너머로 강도진의 달콤하고 능글맞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았어, 알았어. 우리 공주님 부탁인데 당연히 가야지. 금방 갈게.”
임다혜는 전화를 끊고 신이 나서 비취 노리개를 상자에 담으려 했다.
그런데 몸을 급히 움직이다 발이 꼬였고, 만삭의 몸이 그대로 대리석 테이블 모서리를 향해 고꾸라졌다.
비명이 터지기 직전, 나는 번개처럼 달려가 그녀의 팔을 낚아채듯 부축했다.
임다혜는 사색이 된 채 소파에 주저앉았다.
“언니, 진짜 감사해요! 아니었으면 우리 아기 큰일 날 뻔했어요!”
“오늘 우리 부모님도 오시는데, 인연도 보통 인연이 아닌 것 같아요. 여기서 같이 파티해요!”
“우리 남편 요리 솜씨가 기가 막히거든요. 같이 저녁 먹고 가요.”
나는 남을 구실을 찾던 차에 미소를 지으며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래요, 그럼 신세 좀 질게요.”
자리에 앉자마자 강도진에게서 카톡이 왔다.
[서윤아, 정말 미안해.]
[갑자기 VIP 투자자가 보자고 해서 오늘 장모님 생신은 못 갈 것 같아.]
[당신이 나 대신 부모님 잘 좀 챙겨드려. 조만간 내가 따로 근사하게 대접할게.]
화면 가득한 개소리를 보며 나는 차갑게 냉소했다.
[투자자가 중요하지. 일 봐.]
옆에서는 임다혜가 배를 문지르며 조금 전의 아찔한 상황을 떠들어대고 있었다.
“방금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이 아기 정말 어렵게 가졌거든요.”
그녀는 웨딩 사진 속 강도진을 숭배하듯 쳐다보았다.
“반년 전에 하혈을 해서 유산기가 있었거든요. 너무 무서워서 엉엉 울었는데.”
“도진 씨가 능력 좋게 밤중에 당장 강남 성안 국제병원 VIP실을 잡아줬어요.”
“거액을 들여서 최고 권위자 교수팀을 붙여줬더니 아기가 무사히 버텨주더라고요.”
‘성안 국제병원’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반년 전, 우리 아버지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셨던 때다.
당시 나는 해외 프로젝트 때문에 귀국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계좌에 남은 5억을 전부 강도진에게 보내며, 제발 아버지를 성안 국제병원으로 옮겨달라고 울며 불며 빌었다.
강도진은 그때 전화기 너머로 나보다 더 크게 울며 말했다.
“서윤아, 병실이 아예 없대. 그 유명한 교수님도 이미 긴급 환자가 있어서 도저히 안 된대. 나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방법이 없어.”
결국 아버지는 일반 병원 응급실 차가운 복도에서 마지막 눈을 감으셨다.
임종조차 지키지 못한 한이 서려 있는데.
나는 벌떡 일어나 화장실을 좀 쓰겠다며 안으로 숨어들었다.
문을 잠그고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눌렀다. 성안 국제병원 고위직으로 있는 대학 동창이었다.
“기록 하나만 확인해 줘.”
이빨이 부딪칠 정도로 목소리가 떨렸다.
“반년 전쯤, 강도진이라는 이름으로 입원 수속한 기록이 있는지.”
잠시 후,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기록 있네. 그날 강도진 씨가 5억 입금하고 임 모 씨라는 여자 VIP 병실 잡았어.]
[사유는 긴급 유산 방지 관찰.]
친구는 덧붙였다.
[근데 그 임 씨라는 환자, 상태가 전혀 긴급하지 않았어. 그냥 임신 불안 증세 정도였는데 강 씨가 무조건 최고의 자원만 쓰겠다고 고집 피워서 우리도 어쩔 수 없었지.]
내 아버지의 목숨값이었던 그 돈.
차디찬 복도에서 아버지가 기다리던 그 병실과 교수.
그 모든 게 강도진에 의해 상간녀의 하찮은 불안감을 달래주는 도구로 쓰였다.
나는 화면 속 글자 하나하나를 노려보았다.
마침내 눈물이 떨어졌지만,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극에 달한 증오였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가자 거실에는 두 사람이 더 늘어 있었다. 임다혜의 부모였다.
임다혜의 아버지는 상석에 거만하게 앉아 차를 마시며 나를 아래위로 훑었다.
“네가 고양이 보러 온 여자냐? 발 조심해라. 우리 사위가 애지중지 꾸민 집이니까 물건 하나라도 축내면 네 수준엔 감당 못 할 거다.”
그 옆에서 귤을 까먹던 엄마는 눈을 흘기며 거들었다.
“요즘 젊은 애들은 번지르르하게 입고 다녀도 그 돈이 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 알 수가 있어야지. 우리 도진 서방처럼 자수성가해서 깨끗하게 돈 벌어야 당당한 법이야.”
그녀는 딸의 손을 잡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도진이가 버는 돈은 한 푼 한 푼 다 정직한 돈이야! 엄마는 우리 사위만 믿는다.”
나는 화를 내는 대신 미소를 지으며 그들 맞은편에 앉았다.
“어머님 말씀이 맞아요. 사위 분 돈, 정말 ‘깨끗’하죠.”
나는 조용히 휴대폰을 꺼내 시어머니에게 메시지와 위치 정보를 보냈다.
[어머니, 도진 씨가 깜짝 선물을 준비했대요.]
[저녁 식사 장소가 바뀌었으니까 아버님이랑 같이 여기로 오세요. 도착하시면 그냥 벨 누르시면 돼요.]
임다혜는 거실 분위기가 싸한 걸 눈치챘는지 내 팔을 끌며 말을 돌렸다.
“언니, 고양이 보러 온 거잖아요. 선룸에 있으니까 가요.”
나는 감정을 억누르며 그녀를 따라 통유리로 된 화려한 선룸으로 향했다.
하지만 고양이 침대를 본 순간, 전신의 피가 일시에 빠져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고양이 침대 바닥에 깔린, 마구 가위질당해 고양이 오줌 얼룩이 진 그 가죽 매트.
그것은 돌아가신 우리 엄마가 생전에 아버지를 위해 한 땀 한 땀 지어드린 세이블 모피 코트였다.
아버지가 보물처럼 아끼느라 한겨울에도 아까워 입지 못하던 유품.
“이게 상하면 당신 엄마 냄새가 영영 사라질 것 같다”며 애지중지하던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 렉돌 고양이가 미친 듯이 발톱으로 할퀴고 있는 장난감은, 아버지가 한시도 몸에서 떼지 않았던, 엄마의 태발(배냇머리)이 담긴 비단 주머니였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는 그 순간에도 아버지가 손톱이 깨질 정도로 꽉 움켜쥐고 있던 생명줄 같은 것이었다.
반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나는 저 유품들을 찾기 위해 병원의 모든 쓰레기통을 맨손으로 뒤졌다.
영안실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직원들에게 제발 어디 있는지 알려달라고 머리를 조아렸다.
강도진은 그때 눈시울을 붉히며 나를 끌어안고 맹세했었다. 병원이 너무 혼란스러워 응급처치 중에 잃어버린 것 같다고.
그 거짓말 때문에 나는 수많은 밤을 자책하며 보냈다. 아버지의 임종도 못 지키고 유품마저 잃어버린 불효녀라며 내 뺨을 내리쳤다.
그런데 내 아버지가 목숨 걸고 지켰던 그 보물들이, 지금 이 짐승 같은 놈에 의해 상간녀 고양이의 오줌받이와 장난감으로 전락해 있었다.
내 이성이 툭,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그때 현관문이 열렸다. 강도진이 의기양양하게 들어왔다.
“다혜야! 장인어른, 장모님! 저 왔어요!”
그는 손에 들린 선물 상자를 흔들며 봄바람 같은 미소를 지었다.
“이게 다 뭐예요? 다혜 네가 먹고 싶다던 거 다 사 왔어. 우리 아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지!”
임다혜 부모는 입이 찢어지게 웃었고, 임다혜는 수줍게 선룸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자기야, 부모님 계시는데 창피하게.”
“참, 여기 귀한 손님 와 계셔. 고양이 사러 오신 부자 언니.”
“그래? 누구신데?”
강도진이 의아한 듯 임다혜의 뒤편으로 시선을 옮겼다.
나는 오물이 묻은 비단 주머니를 손에 쥐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강도진, 네가 키우고 싶다던 고양이가 겨우 이거였니?”